맨시티 제국이 휘청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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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시티 제국이 휘청이는 이유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주인공으로 뽑을 만한 지도자는 세 명이다. 부임 첫 시즌부터 우승을 향해 달리는 아르네 슬롯 리버풀 감독, 만년 약체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돌풍을 일으킨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스 감독, 그리고 충격적 부진에 빠진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감독이다. 가장 드라마틱한 대상은 역시 ‘펩시티’다. 자타 공인 잉글랜드 축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현재 리그 5위로 처져 있다. 치열한 유럽 축구 정글에서 절대 강자의 실패만큼 세간의 관심을 끄는 소재도 따로 없다.
2016년 부임한 펩 감독과 맨시티의 지난 8년은 완벽에 가까웠다. 리그를 여섯 차례나 제패했다. 2022-2023시즌 역대 두 번째로 트레블(한 시즌에 3개 대회 석권)을 달성한 데 이어 2023-2024시즌에는 전인미답의 리그 4연패 고지에 올라 하늘색 깃발을 꽂았다. 맨시티는 단일 시즌 최다 승점을 비롯해 최다 승리, 최다 득점, 최다 골득실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맨시티의 강세는 인간이 보유한 능력이라기보다 ‘위닝 머신’의 성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올 시즌 맨시티의 성능이 뚝 떨어졌다. 어딘가 단단히 고장이 난 것 같다.
22라운드 기준으로 맨시티는 리그 5위에 있다. 컵대회를 포함해 공식전 5연패 망신을 당했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있었던 13경기에서 한 번밖에 이기지 못하는 최악의 슬럼프에 빠졌다. 리그 22경기에서 맨시티는 6패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 총 패전 수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다. 앞으로 남은 리그 16경기에서 전승을 거둬도 맨시티의 최종 승점은 지난 시즌(91점)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11월26일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페예노르트전이 맨시티의 현실을 상징한다. 이 경기에서 맨시티는 3-0으로 앞섰다. 그러곤 막판 3연속 실점으로 승리를 날렸다. 경기 후, 펩 감독의 이마에는 벌건 손톱자국이 선명했다. 주체할 수 없는 역정이 남긴 생채기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진 원인은 로드리의 공백이다. 발롱도르 수상자 로드리는 개막 다섯 번째 경기 만에 큰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다. 팀플레이의 중추가 사라지자 균형이 깨졌다. 로드리가 출전한 5경기에서 맨시티의 평균 승점은 2.6점이었다. 로드리가 결장한 다음부터 치른 17경기의 평균 승점은 1.47점으로 폭락했다. 마테오 코바치치라는 준수한 백업도 로드리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후벵 디아스, 존 스톤스, 케빈 더 브라위너 등 주축들의 자잘한 부상이 끊이지 않는다. 주요 부품이 고장 난 자동차가 정상 운행하지 못하듯이 맨시티는 좀처럼 예전 화력을 되찾지 못한다.
고집스러운 소수 정예 스타일
이런 문제의 근저에는 펩 감독의 소수 정예 스타일이 깔려 있다. 맨시티의 선수 명단은 눈부시다. 포지션마다 세계 최고가 버틴다. 하지만 주전 의존도가 높다. 뛰는 선수만 계속 뛴다는 뜻이다. 펩 감독의 스쿼드는 풍요 속의 빈곤 상태다. 펩 감독의 전술은 복잡하고 세밀한 데다 계속 진화한다. 선수가 많아도 그의 전술 철학을 온전히 실행할 수준의 주전은 손에 꼽는다. 맨시티에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은 대부분 첫 시즌에 고생한다. 복잡한 펩 감독의 전술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드클래스로 평가받은 페르난지뉴조차 “펩 감독 덕분에 나는 축구를 다시 배웠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1억 파운드의 사나이 잭 그릴리시도 끔찍했던 1년을 보낸 뒤에야 제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펩 감독의 전술 고집은 자연스레 주축 의존도를 높였다. 자기 생각대로 뛸 줄 아는 선수가 딱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케빈 더 브라위너는 올해로 맨시티에서 10시즌째 뛴다. 지난 시즌부터 부상이 잦지만, 건강한 상태의 더 브라위너는 여전히 제1옵션이다. 에데르송, 카일 워커, 존 스톤스, 베르나르두 실바도 2017년부터 지금까지 주전으로 뛴다. 2024년 여름 펩 감독은 바르셀로나로 떠났던 일카이 귄도간을 다시 데려왔다. 귄도간 역시 2016년부터 ‘펩시티’를 완성시킨 일등공신 중 한 명이다. 한창 나이인 필 포든도 ‘펩시티’ 구력만 8년 차에 달한다.
문제는 공신들이 나이가 들었다는 점이다. 올 시즌 맨시티의 선발진 평균연령은 28세가 넘는다. 리그 선두권을 형성하는 리버풀, 아스널, 노팅엄 포레스트(이상 26세)보다 두 살 이상 많다. 첼시 선발진의 평균 연령대는 23세 수준이다. 통계 사이트 〈옵타스포츠〉에 따르면, 맨시티의 뛴 거리와 스프린트 횟수가 지난 시즌보다 감소했다. 영국 현지 매체들은 “펩 감독이 정 때문에 선수들을 제때 처분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맨시티는 지금까지 훌리안 알바레스, 콜 파머, 페드로 포로, 페란 토레스, 에릭 가르시아 등 젊은 자원을 계속 팔았다. 상식적으로는 베테랑을 내보내고 젊은 선수들을 지켜야 했지만, 펩 감독의 팀 빌딩 방향은 정반대였다. 산전수전을 함께 겪은 전우들을 지키느라 스쿼드의 미래성이 희생된 셈이다.
2023년 여름 펩 감독은 떠나겠다는 워커를 간곡히 설득해 눌러 앉혔다. 올 시즌 워커는 기량이 급감해 사우디아라비아 이적을 추진 중이다. 더 브라위너는 계속 아프다. 올 시즌 선발 횟수가 11경기에 그친다. FC 서울 미드필더 기성용은 “그 나이의 선수는 한 번 다치면 계속 다친다. 맨시티는 더 브라위너의 대체를 진작 준비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고인 물’을 제때 배출하지 않은 맨시티는 시간이 갈수록 신선함을 잃고 있다.
다행히 맨시티에는 위기를 타개할 무기가 있다. 풍부한 자금력이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맨시티는 ‘우즈베키스탄 김민재’ 압두코디르 후사노프(20)를 영입했고, 브라질 신성 비토르 헤이스(19), ‘제2의 살라’ 오마르 마르무시(26)도 손에 넣을 전망이다. 펩 감독도 “여름에 선수를 영입하겠다는 구단을 내가 말렸다. 그런데 부상자가 너무 많다. 그때 좀 샀어야 했다”라고 판단 착오를 인정했다. 물갈이 작업은 경기장 밖에서 병행된다. 맨시티는 올 시즌을 끝으로 떠나는 막후 실력자 치키 베기리스타인 단장(60)의 후임으로 포르투갈 출신의 후고 비아나 단장(42)을 내정했다. 비아나 단장은 스포르팅에서 브루노 페르난데스, 마누엘 우가르테, 마테우스 누네스, 하피냐 등의 대형 거래를 잇달아 성공시킨 주역이다.
맨체스터의 원래 주인은 붉은색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앨릭스 퍼거슨 감독은 맨유에서 프리미어리그를 13차례나 제패했다. 역대 최다 우승 감독 부문에서 2위에 랭크된 펩 감독의 우승 횟수가 6회라는 사실이 퍼거슨 감독의 위업을 돋보이게 한다. 퍼거슨 감독이 이토록 장기 집권에 성공한 비결 중 하나가 과감한 결단력이었다. 챔피언 스쿼드를 완성하고도 퍼거슨 감독은 선수단을 계속 갈아엎었다. 모든 선수와 가족적인 관계를 맺으면서도 버릴 때는 확실히 버렸다. 그 덕분에 팀 내에서는 항상 긴장감이 최고조로 유지됐다. 분당 회전수(RPM)가 떨어지지 않는 맨유 제국의 엔진은 항상 세차게 작동할 수 있었다. 펩 감독이 맨체스터 축구 전설까지 새로 쓰고 싶다면, 퍼거슨 감독에게 배워야 할 것 같다.
홍재민 (축구 전문기자·레드재민tv 운영)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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